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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한국 정부는 한일회담에 관련된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였다. 한일회담은 정치적인 주장이나 편견, 선입관을 넘어 학술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인 분석검토의 대상이 되었다.

한일회담에서 다룬 주된 쟁점은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과 기타 협정에 의해 법률적으로 해결되고 한일 양국의 국교도 정상화 되었다. 식민통치에 대한 평가의 문제,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한 일제강점 하 피해자의 보상 문제, 독도문제, 해양 어업권, 한반도에서 반출된 문화재 반환 등의 문제 등 한일 과거사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다.

한일회담에 관한 면밀한 학술적 재검토는 오늘날의 한일관계 현안을 풀어갈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공개한 외교문서는 이처럼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일반인들이나 연구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많은 어려운 점이 존재했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가들의 실증적 연구 수행이 절실해지는 이유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한일관계 현안의 원형이 되고 있는 한일회담의 기초사료가 공개되었다고 하는 현실적인 조건과 이를 기반으로 현안문제의 해결과 새로운 한일관계의 지평을 열기 위한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학술적인 문제의식에서 연구소의 중점사업은 시작되었다.

한일회담 외교문서 공개에 따른 기초 사료연구

중점 연구소 1단계 사업 연구 주제는 '한일회담 외교문서 공개에 따른 기초 사료연구'(2005.11 ~ 2008. 12)로 한일협정과 미결의 전후처리문제 해결을 위한 학술적 검토, 한일협정의 국제정치와 국제비교라는 2개의 세부과제를 편성하여 진행하였다. 한일협정의 교섭기간은 1951년 회담개시부터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 체결시점까지 14년에 이르며, 그 문서의 분량도 약 3만 5천장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다.

회담에서 논의된 주요 이슈는 한일 기본조약협상, 재산 및 청구권협상, 어업협정, 문화재반환, 대일차관도입, 무역협정, 일본거주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등과 같은 난제들이었다. 이러한 이슈들은 1965년 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계속하여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들이다.

이는 한일관계사를 학술적 측면에서 정확하게 규명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었으며, 한일회담의 결정내용

내지 그 교섭과정과 관련한 진위논란과 이견들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하였다. 1단계 연구에서는 먼저 3만 5천장에 달하는 외교문서에 대한 상세해제를 수행하여 『한일회담 외교문서 해제집』(전5권)을 출간하는 한편, 한일회담에서의 주요 이슈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교섭과 협의 과정을 거쳐 결정되었는지를 연구하여, 이들 성과를 바탕으로 『외교문서의 공개와 한일회담의 재조명1; 의제로 본 한일회담』 (2010), 『외교문서의 공개와 한일회담의 재조명2; 한일회담과 국제사회』 (2010)을 출간하였다.

특히『한일회담 외교문서 해제집』은 한일회담의 영역뿐 아니라 해방 후 한국 외교사 분야의 연구 지평을 확대, 심화시키는데 공헌했다는 학술적인 의의를 인정받아, 2009년도 교육과학기술부 대표우수성과, 그리고 2012년 인문사회 기초학문육성 10년 연구 성과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한일회담 이후 한일관계 관련 외교문서 및 기초자료의 수집, 발간, 연구

중점 연구소 2단계 사업 주제는 ‘한일회담 이후 한일관계관련 외교문서 및 기초자료의 수집, 발간, 연구’(2008.12 ~ 2011.11)이다. 박정희 정권 18년간 한일 양국은 국교정상화을 실현시키고 경제협력을 가속화시키는 한편 심각한 외교적 갈등의 경험하였고,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냉전체제에서 데탕트로 이행되면서 새로운 외교노선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박정희 시대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고, 2단계 사업에서는 이를 위해 ①1965년의 한일회담 체결 이후의 한국 경제구조의 대일 의존성의 심화, ②1970년대 중반의 한일양국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 ③1970년대 데탕트 시기의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재조정과 한일관계라는 세 가지 측면을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연구 수행 당시 외교통상부가 공개한 자료 중, 1966년~1977년까지를 연구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총 900건의 문서철과 10만장이 넘는 방대한 양의 개별문서들은 살펴본 결과, 농상회담, 무역회담, 경제장관회의 등의 경제협력에 관한 문서, 독

도문제를 포함한 어업관련 문서, 재일한인의 강제퇴거, 사할린 한인의 귀국문제 등의 해외동포 귀환문제 관련 문서, 북일 교류 및 미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외교관계 관련 문서, 정치인, 민간단체 등 인적교류 관련 문서, 그리고 김대중 납치사건 등을 비롯한 한일 간의 주요사건에 관한 문서 등으로 묶을 수가 있었다.

2단계 사업에서는 이들 문서들을 한일경제협력, 일본 대외관계(북일·미일·중일 관계), 정치사건, 교류 및 방문, 어업ㆍ독도ㆍ대륙붕 문제, 재일재외동포, 기타 등 총7개의 주제군 별로 수집·정리하여 이에 대한 해제집과 자료집을 발간하는 한편, 이러한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수행하여『박정희 시대의 한일관계의 재조명』(2011) 이라는 연구서를 출간하였다.

한일회담 이전 시기 (1945-1951) 한일관계 자료의 수집, 발간, 연구

중점 연구소 3단계 사업 주세는 ‘한일회담 이전시기 (1945-1951) 한일관계 자료의 수집, 발간, 연구’(2011.12 ~ 2014.11)이다. 한일회담 이전 시기는 일본 제국이 붕괴하면서 과거의 제국질서가 새로운 냉전 질서에 편입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한국과 일본은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양국은 과거 청산을 통해 전후 처리의 방향을 모색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냉전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전후 구상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위한 일차적인 규정력을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의 주체로서 한국과 일본은 과거 청산에 대한 상호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며 미국의 전후 구상에 대한 대응과정을 통해 미국의 전후구상을 변용시키는 주체가 되었다.

이처럼 한일회담 이전 시기는 한미일 관계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일관계의 현안들이 다양한 형태로 도출되는 특징을 지니며, 이후 전개되는 한일회담의 성격을 규정하는 배경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한일회담 이전 시기를 한일회담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사(前史)로써 주목하여,1년차에는 GHQ 문서 중 한일관계 관련 문서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쟁점별 목록집을 작성하였다. 2년차에는 1년차에 분류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제집과 주요문서 관련 자료집(제1권 배상 및 청구권 관계, 제2권 한일경제관계, 제3권 재일한인관계, 제4권 어업 및 평화선 관계, 제5권 독도 및 영토관계, 제6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안전보장관계)을 발간하였다. 3년차에는 청구권 문제, 재일 한국인문제, 어업문제, 영토문제 등 한일회담의 주요 현안들이 이 시기 어떠한 방식으로 도출되고 조정되어 갔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였고, 그 연구 성과물로써 『GHQ 시대 한일관계의 재조명』(2016) 이라는 연구서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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